베네치아 싼타 루치아. 1860년, 오스트로 헝가리 지배하에서 역사상 최초로 베네치아를 육지와 연결시켜 산업화 동맥을 아드리안 해의 중요한 항구 중 하나에서 끝나도록 만든 철도역. 1950년대 신역사를 짖기 위해 허물어야 했던 싼타 루치아 성당과 수녀원을 기리기 위해 그 이름을 역에 남겼다.

12월 13일, 어제는 성녀 루치아, 또는 루시의 축일이었고 이를 오늘 처음 알았는데 어제 저녁 9시에 기차를 타러 갔을 때 밤낮 사람들로 북적이는 산타 루치아역에 처음으로 사람이 아무도 없던 것이 괜시리 신묘하게 느껴졌다. 사진은 평소 모습.

오스트로헝가리 지배하에서는 주로 육지쪽의 마르게라 산업 시설과 베네치아에 있는 항구를 연결하여 물자수송의 역할이 더 중요했다. 2차대전 이후 현대화된 플랫폼을 갖춘 접근성 높은 역이 필요하여 육지랑 가장 가까운 베네치아 서쪽 끝을 역사를 건설하기로 결정됐다.


베네치아가 건축사를 연구하기 좋은 이유는 셀수없이 많은 그림들이 이곳에서 그려졌고 대부분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오늘날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설사 일부 사라진 건물도 여러 그림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림은 오늘날 역사가 있는 곳에 위치했던 산타 루치아 성당.

 

마지막 산타 루치아 성당의 모습은 16세기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팔라디오에 의해 재건된 모습. 베네치아에는 수많은 팔라디오의 성당들이 있는데 기존 베네토-비잔틴 또는 베네시안 고딕 양식의 매우 중요한 성당들은 팔라디오에 의해 중건/재건 되었다. 그만큼 산타 루치아도 종교적으로 중요했는데, 그 이유는 성녀 루치아의 렐릭(유해의 일부)가 이 성당에 안치되어 있었기 때문.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가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나 도교처럼 다신교적 요소를 간직한게 바로 성인들의 유해와 그 기적적인 효험을 발휘한다고 믿어 신전(성당)을 따로 만들어 모셔두고 기복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부유했고 무역하러 동서양을 휘젓고 다녔던 베네치아인들은 몸에 좋다면, 재앙을 막아준다면, 부유하게 해준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구매, 갈취, 회유, 거래, 사기 등등)여러 성인들의 유해와 성물들을 이 작은 섬으로 끌어 모았다. 그래서 면적당 성당 밀도는 어느 도시들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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