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 소설의 클래식이라고 소개 되는 할 클레멘트의 중력의 임무를 드디어 읽었다.

재작년에 마션 이후 첫 SF소설이었는데 내가 SF 취향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이 소설을 마쳤을 때 중력에 임무에 대한 감상을 남기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 책이다. 

소설이 처음 발행된 건 1953년이고 아래는 내가 읽은 1978년에 출판된 발렌타인 본의 표지이다.  이 표지 디자인이 스포일러일 줄은 소설의 거의 끝에 가서야 깨달았다. 보통 소설의 도입부에 관한 삽화가 들어가는 다른 책 표지에 비해 온갖 고난을 해치고 나서 다다른 임무의 수행의 클라이막스를 저렇게 날 것으로 보여주는 대담함에 놀랐다. 덕분에 처음에 정말 머릿속에 그리기 어려웠던 외계 지적 생명체인 메스클린인들의 모습을 파악하는 대는 더 이상의 상상이 필요 없어졌다. 그렇다. 그들은 외계 집게벌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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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서 이 책의 다른 표지들도 찾아보았다. 클래식답게 정말 수십여개의 서로 다른 표지들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었다. 초창기 삽화들이 들어있는 표지들은 소설의 한 장면들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어 요즘 티저 영상의 한 장면 같다.

 

 

 

 


 감각적인 표지들도 찾을 수 있었는데 모두 근사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의 부족한 SF소설 독서량 때문인지는 몰라도 계속 마션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조력자와 통신을 하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 제일 유사했다. 또한 소설의 목표가 되는 우주선을 찾아 미지의 행성을 모험하는 설정과 그리고 지리적 난관들이 항상 큰 걸림돌이 된다는 점도 매우 비슷했다. 그리고 먼 거리의 조력자들은 기술과 자원은 충분하지만 주인공에게 다다를 수 없어 주인공은 그런 제한된 지식과 자원 내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상황은 SF 광팬이라 자처한 마션의 작가 앤디 와이어도 분명이 읽었을 이 책이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으리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난관 하나를 겨우 극복하고 한 숨 돌릴라 치면 금세 모든 걸 끝장 내버릴 것 같은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 연이어 등장한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기발한 또는 우연한 방법으로 그것들은 무사히 넘기면서 독자를 소설에 몰입하게 끔 한다. 아마 이게 전형적인 SF소설의 전개 방식이 아닐까 싶다.

독특한 점은 외계의 지적 생명체가 인류보다 낮은 과학 문명 속에 살고 있다는 배경이다. 이는 헐리우드식 SF에 익숙했던 나에게 정말 신선한 설정이었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외계 문명은 인류가 이해하지 못할 수준의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그 점이 우리가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이는 당연히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알기도 전에 우리의 존재를 먼저 알고 있고 심지어 수만광년 떨어진 지구까지 찾아왔기 때문에 우열은 쉽게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컨택트 (Arrival)의 외계인들처럼 선의를 갖고 오신 분들이길 기대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정말 마음먹고 침공을 결심해서 지구에 온 것이라면 영화 같은 그런 신파적 지구 수호는 상식적으로 포기하는 편이 낫다. 미련하게 트럼프가 공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려 개죽음만 늘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며, G20은 신속하게 그들의 식민지를 자청하거나 조공을 바칠 것을 약속하여 생존을 도모하는 편이 더욱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아마 이는 UN이나 NASA의 외계인 출현 시 상황 매뉴얼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을까 강력하게 추정하는 바이다. 

 인류는 아직 롤링 발칸을 개발하지 못했기에 지구 방위는 꿈도 꿀 수 없다

아쉽게도 인류는 아직 롤링 발칸을 개발하지 못했기에 지구 방위는 꿈도 꿀 수 없다. 

그리고 이제 보니 롤링 발칸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은 아래 둘과 핑크의 한 쪽 팔일 뿐이고 레드와 옐로우는 폼만 잡고 있다. 뭔가 익숙하다 싶었는데 대학교의 조별 발표가 겹쳐진다. 레드는 뭍어가다 자기 이름 맨 앞에 올리는 조장놈. 하지만 옐로우는 많은 80년대 생 소년들(나)의 첫 사랑이었으니 특혜를 인정한다.  


소설을 마치고 한 가지 씁쓸한 점은 있다. 열등한 외계인을 대하는 작가의 시선이 과거 "신대륙"에 도착한 우월한 서구 백인의 것과 다소 겹쳐 보였다는 것은 아쉽다.  지구인들이 낮은 수준의 기술 문명을 가진 외계인을 계몽시킨다는 결론은 마치 미개한 문명을 교화시킨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적인 시각이 느껴진다. 과거 백인들은 침략 국가의 주민들에게 그들의 신앙인 기독교를 강요하였다. 하지만 이 소설에 적용해 보면, 종교는 과학 기술로, 식민 국가 주민들은 메크를린인으로 치환하여 생각할 수 있다. 지구인(백인)들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원주민들(메스클린인)이 먼저 자발적으로 기술 전달(개종)을 요청해서 그리했을 뿐이라며 지배를 정당화하는 제국주의자들의 논리가 이 지점에서 떠오른다.

소설 내내 메스크린인들의 지구인에 대한 거의 무조건적인 신뢰와 협조가 특별한 설명 없이 소설 막바지까지 이어지는게 제일 의아했다. 아무리 신기한 기계를 가졌다 한들 그래도 문명인들인 메스클린인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그들의 무리한 요청을 들어줄 만큼 종교와도 같은 지구인들의 지위가 조금 납득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모험의 동기 역시 불공평하다. 지구인들이 위험천만한 탐험의 대가로 제공하겠다는 것이 고작 기상, 지리 데이터이고 지구인들은 그에 반해 메스클린인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면 엄청난 경제적, 기술적 이득을 얻게 된다. 그런데 메스클린인들은 정보의 비대칭에서 오는 이러한 엄청난 불리함을 알고 있다. 비록 그 외계 생명체들이 이문을 위해 어떠한 위험도 감수하는 상인이라지만 불확실한 수익에 목숨을 걸 정도로 맹목적이다. 이는 유럽인들이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손에서 금과 은을 가져가고 대신 성경책을 쥐어 준 것과 다름없는 불공평한 거래나 마찬가지로 보인다. 물론 메스클린의 입장에서 지구인들의 과학 기술만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것을 기대하는 건 충분히 합리적일 수 있다. 하지만 지구인에게 이용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친절한 협조를 여러 위기가 닥쳐도 포기하지 않는 다는 점이 결론을 읽고 나서도 개운하지 않았다. 

이 책에 대한 수많은 리뷰들이 외계인과 인간 사이의 아름다운 우정에 대한 찬사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난 한쪽의 일방적인 헌신과 불평등이 호의, 우정 등으로 대충 얼버무려 미화시키는 의견들에 동의할 수 없었다. 소설만 보자면 오래전에 출판되었음을 감안해도 매우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있고 신선하다. 미지의 지적 생명체들 간의 이상적인 조우도 잘 묘사되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 리뷰 역시 소설 보다는 너무 영화 리뷰 같다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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