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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마지막은 내 얼굴을 그려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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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육수 남은 걸로 짬뽕을 처음 만들었다.
호떡을 생크림과 먹으면 아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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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음악적 가치나 인격은 논외로 하고도 그의 인지도만큼은 아직도 유효한 자산이라 폐막식에 깜짝 등장해도 멋졌을것 같다.
하지만 그 강남스타일을 지난 몇년간 동상 설립, 두유노우싸이?등과 같이 오용해오느라 한국인들 사이에서만 어느새 부끄럽고 저질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
싸이 카드는 기획 단계에서도 참 버리기 아까운 카드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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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이 즐겨하는 예언의 그가 노무현이 사망한 후 노무현의 후계자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문재인을 짚어낸 이후부터 실제로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순간까지만 쓸모있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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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 지기 위해 필요한 것. 

인생의 질문이다. 행복의 요소들을 갖추면 비로소 나는 행복해 진다라는 공식은 매우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 

한국어에서 '행복해 진다' 또는 '행복하게 된다'라는 표현을 보면 행복은 하나의 상태로 분류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와 '행복'은 같은 게 아니게 들린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한 행동들, 예를 들어 사랑하기, 원하는 물거을 갖기, 되고 싶은 누군가가 되기를 통해 나를 행복에 이르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믿기에 나는 저런 노력들을 하는 게 인생의 목표, 즉 행복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뻔한 이야기들을 굳이 쓰는 이유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임현정이라는 한 '인간'의 이야기를 들어서다. 그는 행복은 만약에 내가 무엇이 되면, 어떤 것에 성공한다면 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없이도 되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같은데 그는 피아노가 없더라도 그냥 존재 자체로 행복해야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행복한 인간으로써 피아노에 앞에 앉아 자신의 내적 행복을 가져오는게 그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그의 말을 곱씹어 보고 드는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행복은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의 요인이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내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알게 됐다. 

나 존재 자체로 행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럼 왜 나는 행복하지 않지? 나를 불행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고통이라고 한다면 그 고통도 내 안에 있는 것 일까 아니면 밖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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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와인을 한 번 맛보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곧이곧대로 믿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허세와 과장이 섞인 이 말이 나에겐 못 마땅하게 들렸다. 이런 말을 할 처지가 못 되지만 호기심은 많은 나의 자기 보호 본능에 사실은 더 가깝다고 인정한다

나는 지금 크리스탈 잔의 2부 정도를 채운 그람스 10년 숙성 토니 포르투를 이미 다 마시고 난 다음 이 글을 적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는 나도 저 말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느꼈다. 누런 빛이 돌지 않는 포르투는 이제 내 눈과 코에 들어 오지 않을 걸 걱정한다. 오히려 10년 짜리가 이 정도면 20, 30년 동안 오크 통에서 화학작용을 하고 있는 액체는 도대체 무엇이 되었을까 궁금해 못 견딜 정도다

내가 포르투갈에 처음 왔을 때 포르투 와인의 존재 자체도 알 지 못했다. 미국인 친구는 나에게 포르투 와인이 레드 와인에 블렌디를 섞은 거 같다고 말했다. 그냥 기본 숙성된 포르투를 처음 맛 보았을 때 그 친구의 말이 정말 옳다고 생각했다. 꽤 달고 센 와인 정도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내가 경험해 본 와인 세계의 크기와 내 어휘력으로 그 이상의 묘사가 당시에는 딱히 없었다. 작년 춥고 습한 겨울 밤에 홀짝이는 용도로 싸구려 포르투 한 병을 집에 두고 마셨다. 그 이전에는 싸구려 그라빠였었다

그러다 지난 크리스마스 무렵, 큰 맘먹고 누가 좋다고 알려 준 콥케 10년 숙성을 면세점에서 사서 누군가에게 선물해 드린 적이 있다. 식사 초대를 받았었는데 후식으로 설탕에 절인 직접 기른 배 조각들 위에 그 포르투를 부어 함께 먹었다. 그때 비로소 처음 경험한 10년의 향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훌륭한 것들이 많음에도 내세우는 법이 없는 포르투갈 사람들처럼 이 적갈색 액체는 포근하고 여운이 긴 이전과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다. 루비처럼 검붉었던 와인은 오크 배럴 속에서10년의 화학작용을 겪고 나면 자신을 감싸고 있는 나무의 성질과 향까지 뽑아내 고치를 찢고 나온 기품있는 나비로 탈바꿈했다.

이 맛에 어울릴 만한 묘사를 생각하다 딱 이거다 싶은 게 있었다. 그건 한방탕이었다. 특별한 목욕탕에 있는 쑥과 감초 향이 섞인 거무스레한 그 한방탕의 내음이었다. 어쩐지 익숙하다 싶었다. 일종의 허브 또는 약초의 향이 삼킨 다음에 휘발되는 알콜과 함께 비강 안을 오랫동안 채운다. 숙성 기간이 짧은 포르투에서 느껴지는 강한 알콜향은 온데간데없고 오크와 포도 이 두 가지 식물이 만난 지 10년이 지나서 생긴 자식같은 향이 나온 것 같다.

잘 숙성된 포르투는 식사를 마친 다음 샷으로 마무리하는 디져트 와인처럼 즐기거나 위스키처럼 춥고 공허한 밤 또는 불안한 밤 마음을 감싸주고 싶을 때 마시면 좋다. 강한 향과 도수 때문에 식사용으로는 과하다. 음식 맛을 압도해 버릴 것이다. 병마게가 꼽았다 뺐다를 반복할 수 있도록 코르크와 플라스틱이 결합되어 만들어져서 한 병을 사면 몇 주 동안 두고 마실 수 있다. 보통 와인만큼 잔에 따르지 않고 훨씬 작은 전용 잔에 절반 이하로 따라서 마신다. 대략 샷 글라스로 두세 잔 정도의 양이다. 한편 같은 도수의 소주의 경우 한국에서는 한 사람이 한 번에 1-2병씩 마시는 걸 보면 한국인의 과음 습관이 아주 심하다고 느껴진다.         

 

내가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을 돌이켜보면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이틀간 일어난 재앙

하루에 약 2시간씩 폭풍우가 해안을 휩쓴다. 

쨍쨍한 하늘에 찜통더위가 이어지더니 갑자가 하늘이 어두워지고 여기가 지구가 아닌 것 같이 변한다. 

가까이 떨어지는 벼락과 천둥소리에 자꾸 놀라 움츠려든다.


토요일은 오랜만에 꾸에리니 스탐팔리아 도서관에 갔다. 

내가 자주 앉는 자리에 가서 가방을 내려놓을 때 이미 그 놈들은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고 놀랐다. 하지만 한국인보다 소음에 대한 인내의 역치가 월등히 높은 이탈리아에서 산지도 일년이 넘어 그러려니 하고 조용해 지길 기다렸다. 

그들의 소란은 정말 대단했다. 어떻게 그렇게 조용한 도서관에서 그것도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데 그렇게 큰 목소리를 아무렇지 낼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기다렸다. 물론 몇 번 쳐다보긴 했으니 내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도 않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떤 말을 어떤 식으로 할 지를 생각하다 보니 심박수가 증가하기 시작한다. 나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긴장했다. 이렇게 말하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하면 꼭 감정에 압도당하고 만다. 생각이 정리가 되기도 전에 그만 말이 튀어나왔다. 

Scusami, potete racontare alla cafeteria. 

내 말이 끝나자 한 놈이 나를 잠시 쳐다보다 빠르게 말을 하기 시작한다. 내 예상과 전혀 다른 전개에 이미 긴장한 나는 더욱 당황하게 된다. 아니 당연히 미안하다고 하고 그만 두거나 밖으로 나갈 줄 알았는데 뭔 할말이 그렇게 많을 수가 있지? 나는 그의 말을 듣는 척하다가 못 알아듣겠다고 하고 시끄러워서 방해 되니 카페로 가라고 영어로 다시 말했다. 그 놈도 영어로 핑계 같지 않은 핑계를 대기 시작하니 나도 더욱 흥분했다. 그것도 실실 쪼개면서 이야기하고 나보고 흥분하지 말라고 하니 난 거의 뚜껑이 열릴 지경이었다. 나는 더 이 상황을 수습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분하고 한심했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난 내 한마디면 간단하게 상황이 정리될 걸 예상했는데 정말 말이 통하지 않아 패닉에 빠진 기분이었다. 언어도 상식도 통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도 목소리를 높이며 함께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상황이 인식되었다. 나는 수습이 불가능해진 이 상황을 그냥 회피하고 싶어졌다. 나는 너랑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고 그 자식의 말을 무시하면서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그것 말고는 더 이상 이 상황을 모면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내가 먼저 그 자리를 피하지 않음으로써 나의 신념이 지켜지길 바랬다. 

모든 걸 지켜보던 내 옆의 여자가 다시 그 놈들과 이야기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놈들이 자리를 떴다. 내 말은 코로 듣고 다른 사람의 말에 움직인 건지, 아님 내가 거의 다 납득 시킨 다음에 그 옆 사람이 마무리를 지은 건지는 모르겠다. 근데 이게 쪼잔하게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제서야 내가 했어야 했던 말들이 마구 머리 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몰상식한 행동과 말도 안되는 변명들은 정말 아주 간단한 상식들을 언급하기만 하면 쉽게 납득 시킬 수 있었을 텐데하면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혼자 흥분하고 당황해서 제 풀에 꺾여버린 게 수치스러웠다. 

이 괴로운 마음이 3일 째 이어지고 있던 찰나에 월요일 오후엔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찾으러 갔다. 내가 우편물을 찾으러 오라는 쪽지를 잃어버려서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고 찾으려고 했는데 직원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다시 답답하고 분했다. 직원은 나에게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은데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기분이 정말 싫다. 나 스스로도 멍청해지고 상대방도 나를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한 상황. 

내 에너지와 의지를 갉아먹는 가장 큰 데미지 중 하나이자 상당히 자주 내 코에 정타로 들어오는 잽들과도 같다. 

그래서 나는 가드를 올린 채 다시 이탈리아어 교재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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