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기 전에 나가 산책을 나갔다. 베네치아에 살면서 좋은 점은 동네 마실을 베네치아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괜찮은 제과점인 DAL MAS앞을 지나가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 안을 들여다 봤다. 

신나게도 아직 프리텔레가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짜바요네와 베네치아네 하나 씩 골랐다. 

프리텔레는 홈런볼과 비슷한 구조로 크고 아름답고 부드러운 밀가루 반죽 튀김안에 여러 크림을 채워 넣는 베네치아 지역에서만 먹는 스넥이다. 보통 새해부터 카니발이 끝날 때 까지만 베네치아 거의 모든 제과점에서 판매한다. 나는 이것에 환장하여 재산을 탕진하고 있다. 

이번 시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떨리는 마음으로 짜바요네가 든 놈을 꺼내 들었다. 슈가 파우더가 검정 코트 위에 떨어지고 삐져나온 크림이 손에 범벅이 되는 걸 아랑곳 않고 고이 한입 베어 물었다.  

'역시 이 집 짜바요네는 유독 럼이 많이 들어가 쌉싸름함이 남다르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 처음 짜바요네 크림이 들어간 프리텔레를 먹어보고 이게 뭔가 싶었다. 일 년이 지난 올해는 한동안 거의 날 마다 사 먹지 않으면 잠들 때 중요한 의식을 빼 먹은 듯한 허전함이 들 정도로 이 충실한 특대 버전의 홈런볼을 탐닉했다.

돌 지난 아기 주먹 만한 이 튀김 덩어리 안을 가득 채운 검노란 크림 맛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홍어 맛을 알게 된 외지인이 목포 사람들로부터 "인자부터 자네는 전라도 사람이여"라는 말에 버금가는 영예라고 혼자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짧은 산책을 이렇게 적어 두는 이유는 해질녘 언제나 관광객으로 붐비는 스트라다 노바에 새로 붙은 아래의 포스터 때문이다.

나는 이 포스터의 메세지와 이미지를 한참 동안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유럽인이든 조선인이든 사람은 누구나 위선적이다. 하지만 나는 어려운 시간일 수록 마치 알몸에 가리기 위해 거적처럼 집어 드는 위선이 때로는 내 삶에 큰 차이를 만든다고 믿는다.   

2년 전 후암동의 한 도서관 행사에서 손택수 시인이 한 이야기가 떠 올랐다.  

나치에 의해 유대인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매일 반 컵 분량의 물을 배급 받았다. 차랍시고 주는 것인데 그냥 거의 다 식은 데운 맹물 일 뿐이었다. 수감자의 대부분은 언제나 모든 게 부족했기에 그 즉시 마셨다. 

그리고 일부는 그 물의 절반을 마시고 남은 절반으로 조심스레 얼굴에 묻은 때를 닦고 수염과 머리카락을 쓸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낭비처럼 보이는 행동을 숭고한 의식처럼 매일 이어갔다. 나치가 패망하고 그 지옥같은 수용소에서 해방된 수감자들 중 살아 남은 사람들 대부분을 보니 그렇게 매일 조용히 자신의 한 꺼풀의 존엄이나마 유지했던 사람들이었다. 

팔리지 않는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드는 사람들과 누군가의 위선적이라는 시선에도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 역시 분명히 인류 전체의 존엄을 유지하는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쓸모없이 아름다운 일들을 하는 사람들 덕분에 내가 까먹는 인류 전체의 존엄이 그나마 상쇄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려 한다. 

또 이런 무임승차 부끄러워하는 나의 위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오늘의마실#Welcomerefugees#베니치아

2017년 1월 베네치아

'파테*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무관심과 모욕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져버렸다. 인간의 목숨은 체류허가보다 더 귀하다.'

#Welcomerefuees  

*아프리카 출신 난민인 파테는 2017년 1월 베니스 리알토 다리 근처 대운하에 몸을 던졌다. 그 당시 다리 위와 그 주변에는 수 만 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파테가 빠진 운하 역시 사람들을 가득 채운 수상버스와 곤돌라 여러 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관광지 한가운데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가 익사하는 장면을 구경만 했고 아무도 물속으로 뛰어 들어 그를 구조하려 하지 않았다. 운하 폭은 30여미터 밖에 되지 않고 누군가 그를 끄집어내려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았다. 슬프게도 마지막 순간 구조 대신 그가 받은 것은 난민들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던 인종 차별주의자들의 조롱과 모욕이었다. 베니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전체는 자신들의 드러난 추한 민낯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유럽 사회 전체에서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는 인간성 상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베네치아에서 이 문제에 대해 반응은 부끄러움과 관광 산업에 미칠 영향 때문인지 쉬쉬하는 분위기다. 이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일부 난민들과 이탈리아 활동가들은 베네치아 산타 루치아 역 앞 광장에서 위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었다.    

내가 태어난 나라가 스스로의 민낯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보면 참담함을 느낀다. 

"이 지구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 만들었다네. 믿을 수 없다면 조간신문을 사서 읽어보도록 하게. 어떤 신문이든 어떤 날짜든 상관없다네." 

- 이랑, '신의 놀이' 앨범의 '좋은소식 나쁜소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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