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는 중학교 시절이 자신의 인생의 최악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사춘기가 되면 2차 성징이 도드라지는 서양 여자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신체 발달이 느린 남자 아이들의 호기심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그 호기심은 잠자리 날개를 양손으로 잡고 반대 방향으로 잡아 당겨 그 속살을 보는 순수한 아이의 것 만큼 잔인하다.

신체적 차이가 같은 반 친구라는 인식을 뒤덮어 버리는 생애 최초의 타자화 경험일 것이다. 

클라우디아는 남자애들의 짓궂은 장난을 피하기 위해 남자애들처럼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 그녀가 치마를 입은 걸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남자 아이들의 호기심 해소가 폭력적인 수준에 이르러도 여자 아이들은 별 도리가 없는 것도 한국과 마찬가지다. 

더러운 농담과 심한 장난이 워낙 일상적이라 화를 내거나 울면 과도하게 예민하고 쿨하지 못한 아이 취급을 받는다. 이것은 아이들 사이의 권력 관계에 가장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무리에서 배제될 수도 있는 큰 위험이다. 

그렇다고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해도 그들은 그리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는다. 사이좋게 지내라는 훈계 수준으로 자신의 도리를 충분히 다 했다고 여긴다. 그 이후의 다른 남자 아이들의 보복성 장난은 고스란히 일러바친 아이의 몫이 될 것이 뻔하다. 

꽤나 놀라웠다. 내가 지금까지 느낀 이탈리아 여성들에 대한 인식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본 이탈리아 여자들은 언제나 기분껏 입을 가리지 않고 큰 소리로 웃는다. 상대방이 어이없는 소리를 하면 손끝을 모아 흔들며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 줄 안다. 다리 사이가 살짝 보이는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어디 서나 편하게 앉고, 담배 피우는 모습이나 문신이 남에게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 와서 성적 수치심이라는 게 남성들이 여성을 제압하고 통제하기 위해 고안해낸 것인지 진짜 인간의 본성인지 가끔 헷갈리기 시작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당당한 이탈리아 여자들 대부분의 학창 시절 역시 이런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도 남자 아이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넘어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는 게 의외였다. 나는 한국 여자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지위를 갖는 이탈리아 여자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어떻게 저런 굴레로부터 해방되는지 아직 너무 궁금하다. 

물론 그녀들이 한 순간에 완전히 남성들과 동등한 위치가 되는 경우는 물론 여기 서도 없다. 이탈리아는 서구에서도 손꼽히는 여성 혐오와 성차별 국가이다. 요즘 한국 인터넷에 회자되는 '이탈리아 여행 중 로맨틱한 이탈리아 남자들의 시적인 픽업 라인 들어보기'는 한국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예쁘장한 얼굴의 재벌 3세와의 달콤한 신데렐라 스토리만큼 비현실적일 것이다.        

한편, C가 미디어에서 본 일본 선생과 제자 사이의 강한 유대가 개인주의의 문화에 속한 그녀에게 부러울 정도로 인상적으로 보였나 보다. 

나는 나의 한국 대학원 지도 교수님과의 특별한 유대에 관한 좋은 예시를 소개하며 그녀의 선입견을 더 강화 시켜준 것에서 멈췄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 선생들과의 포스트 트라우마적인 수많은 악몽들은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기억을 하나 하나 끄집어 내다가 피어오를 나의 독기가 그녀에게 느껴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몇몇 선생님과의 멋진 추억도 말해주었다. C를 너무 좋아했던 한 선생님은 새로 태어난 자신의 딸에게 같은 이름을 지어줬을 정도로 그녀를 특별히 아꼈고 수업 이후에도 연락을 주고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선생님과의 남다르게 친한 관계를 부담스러워한다.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단지 그녀는 자신이 정한 어떤 거리 이상으로 누군가가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것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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