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친구 ㅇ과 나눈 대화에서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나: (그쪽에서 나에게) 눈치 이정도 주면 알아서 연락 안해야 되는 거 맞다고 느껴서 

친구: 음.. 그렇군, 좀 서운했겠네

나: '나도 이제 남들이랑 쉽게 어울릴 수 없는 아저씨가 되었구나. 빨리 눈치 채야지' 라고 생각했어 

뭐 어쩔 수 없지. 내가 좋다고 남도 나를 좋아하길 기대하면  남이 날 불편해할 수 도 있으니. 뭐 다반사지 뭐

친구: 너 그얘기 자주하더라

나: 그래? 그렇게 생각할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ㅇ: 아저씨가 되었구나 빨리 눈치채서 불쾌한 아재가 되지 말아야지 같은거.  그냥 너랑 안맞은거지

나: 당연히 그래야지. 졸라 민패에 짜증나는 사람 되서 뭐해

나: 잘 맞는 상대가 많이 줄어 들면 아저씨가 된거라고 생각해서

ㅇ: 모르겠다 내가 그 상황에 없었으니 너가 하는 말로만 상황파악을 할수 밖에 없지만 

너 그렇게 민패에 짜증나는 사람으로 사람들이 받아들일 만큼 가지는 않는것 같애

그냥 뭐 내가 너 친구고 하니까 이미 객관성을 잃어버린것일수도 있지만 ㅋㅋㅋㅋ

그래도! 민폐아저씨 개저씨 그런건 아니다

나: 뭐 그냥 내가 혼자 오바하다가 나중에 혼자 실망하기 싫어서 미리 관두는 거 같애

ㅇ: 음... 뭐 그건 공감해

나: 나도 오랜만에 친구 생기나 싶었는데

그쪽에서 "됐어요" 그러니깐 민망하고

ㅇ: 그냥 그들과 성격 성향이 안맞는거라 하자 여자들끼리 놀고 싶은가부지~ ㅋㅋㅋ

나: 그런 걸 직접적으로 이야기 해주지 않으니 혼자 며칠 동안 추리 해서 판단해야 된다는 것도 유쾌하진 않잖아. 

게다가 그 누구의 잘 못도 아니고

ㅇ: 응 그렇지 

나: 응 그래서 내 결론도 마찬가지야. 맘 맞는 여자들끼리 눈치 안 보고 재밋게 편하게 놀고 싶은 거 같은데 눈치 없는 부장처럼 끼지 말자. 부장 되기 전에 사라지는 거지 ㅎㅎ

ㅇ: 뭐 내 요지는 너도 말한대로 성격 성향 등등이 안맞은 상황인 것 뿐이지 너가 눈치 없는 부장까지 된건 아니라는 거였어

야 한국오면 나랑 같이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자 

나: 나이 드는 게 어릴땐 막연한 공포였는데 말이지. 지금은 피부에 닿을 듯한 거리에서 위기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해서 더 무서운 것 같애. 

직업, 돈, 연애, 인간관계....진짜 나이가 제약이 되는 걸 실감하게 되니깐 그 크던 자신감이나 거침없음이 점점 사그라지고 있는 기분이야

그 좁아진 운신의 폭에 어떻게 이미 부풀어진 자아를 끼워 넣어 살아야 할 지 모르겠어. 

ㅇ: 자기 객관화가 나이가 들수록 필요하다는 걸 윗세대를 보면서 느끼고 있지만 너무 나를 죄어들지는 말자 사실 이말은 나 자신한테 하는 말이기도해

너무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나 스스로 너무 묶고 죄는것 같아서 나이들수록 그 좁아지는 삶을 느슨하게 하도록 노력하자? 나는 내가 눈치 좀 덜 봤음 좋겠고 때로는 민폐 끼치는 것도 신경 덜쓰면 좋겠고 그렇거든 ㅎㅎㅎ

나: 그런 고민 많이 안해도 되는 편안한 곳을 찾아 가는 게 가장 자연스러울텐데

ㅇ: 참 이건 딴 얘길수도 있는데 비슷한 얘기를 여동생이랑 하면서 여동생이 하는말이 애를 낳고 기르다보면 그렇게 될수 있데 ㅎㅎㅎㅎ 

나: 30대는 그런 여백의 삶이 갑자기 확 사라지는 나이인것 같애

대부분 결혼해서 가정안으로 사라져버리고, 일을 안하는 사람들은 직업인들의 삶과 완전 결이 달라지고. 

어릴때랑 다른 게 나이가 동질성을 만들어주는 시기가 30대가 되면 덜컥 끝나버려서 둥 떠버려

우리처럼 결혼 안 한 미(비)혼 비 정규직 근무자들은 특히. 정말 주변 레퍼런스도 없고 낄대도 없고

ㅇ: ㅋㅋㅋㅋ 낄대 있어. 걱정마 한국으로 와

나:  한국은 그나마 찾을 수 있겠지

난 아직 이곳 생활이 정착이 안되서 그런 곳을 못찾아서 가끔 나를 건강하게 들어낼 곳이 없어서 답답하고 심심해

ㅇ: 응 그러겠다

나: 여기서 한국 남자들 끼리 어울리기는 정말 고독사하는 것 만큼 싫다 ㅋㅋㅋ

졸라 개저씨 속성 코스 밟는 거야 ㅋㅋㅋ 몇명 잠깐 봤는데 어휴 스멜이....

암튼 내가 원하는 모임이 없고 나를 원하는 모임이 없으니 내가 만드는 수 밖에

ㅇ: 너의 창작력을 함께 불태울 그룹이 주변에 쉽게 찾을 수 없다는게 안타깝다. 뭐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자기가 낄곳이 없다고 소외감을 느끼는 한국 사람들도 많이 있긴한데.. 어쨌든 이런저런 쪼꼬마게 라도 장난하고 있음 친구도 찾을거야

나 이제 가야함. 

나중에 또 얘기해

잘지내고 있고

'섬 사람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젠 외국어 패치가 안돼  (0) 2017.08.07
미국에서 내향적인 동양인으로 살기  (0) 2017.08.07
2017년 7월의 구름들  (0) 2017.08.05
휴일에 한 일  (0) 2017.07.10
그것만큼만 당신 세상  (0) 2017.07.09


'섬 사람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에서 내향적인 동양인으로 살기  (0) 2017.08.07
친구와의 대화  (0) 2017.08.05
휴일에 한 일  (0) 2017.07.10
그것만큼만 당신 세상  (0) 2017.07.09
여성은 어디서나 약자다  (0) 2017.06.29

이상하게 잠 못 드는 밤을 보냈다.

주말에 뭔가 하지 않으면 후회가 남기에 좀비같은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처음으로 자연사 박물관에 가서 화석과 뼈들을 보았다. 

공룡과 같은 시대를 살았을 거대한 길이가 8미터는 될 법한 악어, 꼬리가 몸통 만큼 긴 공룡, 정말 뼈만으로도 아름다운 고래 그리고 인류의 선조들. 

가장 멋졌던 것은 여러 고래의 수중에서 녹음된 울음소리였다.

지구에서 가장 평온하고 자유로운 생명체의 언어는 신비로웠다. 설명과 같이 무리에게 전하는 단순한 메세지보다 많은 내용이 있을 거라 믿게 된다. 

고래의 말은 이제 내가 가장 이해하고 싶은 언어가 되었다. 

고래가 보고 싶어졌다.


7월은 여름 창고 정리 세일 기간이다. 

멀리 있는 쇼핑몰에 가지 않고 산 마르코 근처로 갔다. 가는 길에 가이드를 하고 있는 유리와 지나치며 짧은 눈 인사를 나눴다. 

많은 가게를 구경했다. 첼리오, 베네통, 마시모 뚜띠, 비알레티, 알 두카 다오스타, 코인.

싼 건 더 싸지고, 비싼 건 여전히 비싼 가운데 평소 근처를 지날 때 마다 꼭 한번은 들여다보게 되는 멋진 남자 옷 가게를 계획에 없이 다시 보게 되었다.

면 반바지를 찾고 있었는데 쇼 케이스에 좋은 소재의 반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지날 때 마다 항상 눈길을 끌었던 옷가게였지만 비싸서 들어가 구경해볼 엄두를 못 내던 곳이다. 오늘은 70%세일이라 길래 큰 맘먹고 처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 옷 가게는 이탈리아 북부 대도시에 사는 잘 다듬은 은색 수염을 기르고 원색 트라우져와 블레이져에 화려한 패턴의 스카프의 조합을 즐길 줄 아는 이탈리아 중년 남성이 주 고객 층일 법한 곳이다. 나도 이런 스타일이 어울릴까 항상 궁금했지만 이 정도 고급 부티크는 들어가기 어렵다.  그런데 70%세일이라니. 나 같은 이에게도 손을 내미는 듯한 이 기분. 

재고 처리를 위해 디스플레이는 잊고 옷가지들을 쌓아 놓은 모습이 나를 더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쇼윈도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진한 갈색의 반바지를 입어보았다. 이런 도톰한 재질과 화려한 안감의 반바지를 처음 착용해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거의 사야겠다는 마음으로 윗 층에 다른 옷들도 살짝 구경해 보러 올라갔다. 반바지가 아닌 수트 바지들이 역시 파격 세일 중이었고 아까 본 반바지와 거의 비슷한 가격의 진한 파란색의 판탈로니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기 때문이다. 

남녀 직원이 서로 쉴세 없이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바지를 갈아 입어보았다. 역시 더 좋은 재질의 바지였고 바지 주머니용 안감에는 카날 그란데에서 바라본 14-15세기 베네시안 고딕 스타일의 저택들이 프린트 되어 있었다. 집에 다가 안감이 보이게 걸어 놓고 싶을 만큼 쓸데없이 아름다웠다. 생애 최고의 바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게다가 이 바지님을 집으로 모시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 몸을 낮춰 주시기 까지! 

쇼핑백의 두께마저 두툼하다. 기분이 좋아졌다. 

'섬 사람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구와의 대화  (0) 2017.08.05
2017년 7월의 구름들  (0) 2017.08.05
그것만큼만 당신 세상  (0) 2017.07.09
여성은 어디서나 약자다  (0) 2017.06.29
한국 남자를 만나다  (2) 2017.05.2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