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오랜만에 꾸에리니 스탐팔리아 도서관에 갔다. 

내가 자주 앉는 자리에 가서 가방을 내려놓을 때 이미 그 놈들은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고 놀랐다. 하지만 한국인보다 소음에 대한 인내의 역치가 월등히 높은 이탈리아에서 산지도 일년이 넘어 그러려니 하고 조용해 지길 기다렸다. 

그들의 소란은 정말 대단했다. 어떻게 그렇게 조용한 도서관에서 그것도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데 그렇게 큰 목소리를 아무렇지 낼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기다렸다. 물론 몇 번 쳐다보긴 했으니 내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도 않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떤 말을 어떤 식으로 할 지를 생각하다 보니 심박수가 증가하기 시작한다. 나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긴장했다. 이렇게 말하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하면 꼭 감정에 압도당하고 만다. 생각이 정리가 되기도 전에 그만 말이 튀어나왔다. 

Scusami, potete racontare alla cafeteria. 

내 말이 끝나자 한 놈이 나를 잠시 쳐다보다 빠르게 말을 하기 시작한다. 내 예상과 전혀 다른 전개에 이미 긴장한 나는 더욱 당황하게 된다. 아니 당연히 미안하다고 하고 그만 두거나 밖으로 나갈 줄 알았는데 뭔 할말이 그렇게 많을 수가 있지? 나는 그의 말을 듣는 척하다가 못 알아듣겠다고 하고 시끄러워서 방해 되니 카페로 가라고 영어로 다시 말했다. 그 놈도 영어로 핑계 같지 않은 핑계를 대기 시작하니 나도 더욱 흥분했다. 그것도 실실 쪼개면서 이야기하고 나보고 흥분하지 말라고 하니 난 거의 뚜껑이 열릴 지경이었다. 나는 더 이 상황을 수습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분하고 한심했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난 내 한마디면 간단하게 상황이 정리될 걸 예상했는데 정말 말이 통하지 않아 패닉에 빠진 기분이었다. 언어도 상식도 통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도 목소리를 높이며 함께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상황이 인식되었다. 나는 수습이 불가능해진 이 상황을 그냥 회피하고 싶어졌다. 나는 너랑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고 그 자식의 말을 무시하면서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그것 말고는 더 이상 이 상황을 모면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내가 먼저 그 자리를 피하지 않음으로써 나의 신념이 지켜지길 바랬다. 

모든 걸 지켜보던 내 옆의 여자가 다시 그 놈들과 이야기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놈들이 자리를 떴다. 내 말은 코로 듣고 다른 사람의 말에 움직인 건지, 아님 내가 거의 다 납득 시킨 다음에 그 옆 사람이 마무리를 지은 건지는 모르겠다. 근데 이게 쪼잔하게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제서야 내가 했어야 했던 말들이 마구 머리 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몰상식한 행동과 말도 안되는 변명들은 정말 아주 간단한 상식들을 언급하기만 하면 쉽게 납득 시킬 수 있었을 텐데하면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혼자 흥분하고 당황해서 제 풀에 꺾여버린 게 수치스러웠다. 

이 괴로운 마음이 3일 째 이어지고 있던 찰나에 월요일 오후엔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찾으러 갔다. 내가 우편물을 찾으러 오라는 쪽지를 잃어버려서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고 찾으려고 했는데 직원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다시 답답하고 분했다. 직원은 나에게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은데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기분이 정말 싫다. 나 스스로도 멍청해지고 상대방도 나를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한 상황. 

내 에너지와 의지를 갉아먹는 가장 큰 데미지 중 하나이자 상당히 자주 내 코에 정타로 들어오는 잽들과도 같다. 

그래서 나는 가드를 올린 채 다시 이탈리아어 교재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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