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일찍 남산으로 향하는 날이다. 연구소 식구들을 위해 융 세미나에서 특식을 준비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내가 자신있는 '매실액이 들어간 비빔국수'를 맡았다. 모든게 연구실 주방에 갖추어져있어 어렵지 않게 맛을 낼 수 있었다. 인비선생님이 직접 따오신 마법의 푸성귀들은 더 없이 입맛을 돋구어 주었다. 정은하선생님의 '임의 제조 콩국수'도 놀라웠다. 
 사람들이 먹고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은근히 예의주시했다. 남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기쁨은 특별하다. 오늘은 마치 잔치집 분위기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즐겼다. 고미숙 선생님 말씀처럼 밥과 공부는 함께 해야 진뤼.

 오늘도 말을 많이 했다. 정제가 된 생각도, 그렇지 않은 것도 도반들과 함께 질문하고 대답하는 건 가장 큰 즐거움이다.

정은하 샘이 던지신 '창조'의 화두로 토론은 시작되었다. 창조개성화 과정의 여러 의미에 대해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송성복 샘의 '자기'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때로는 비장하기까지 하다. 인간적인 응원을 보낸다. 

볼 날이 얼마 남지 않는 희사 샘의 생각은 뜨끔하면서도 가장 큰 공감이 간다.
"사람들은 그림자를 스스로 미화한다. 남들 앞에서 그림자를 인정하기 부끄러워한다."

오카 샘은 아니무스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힘드신가 보다. 언젠가 아니무스의 좋은 작용을 체험하시길 바래본다.

가장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말씀해 주시는 분은 인비 샘이다. 아니마에게 질문을 던졌다는 말에 다들 놀랐다. 

일부러 결혼하신 분들께 자신들의 배우자에게서 보였던 아니마/아니무스의 모습을 여쭈었다. 솔직하게 경험을 말씀해주신 규정, 쑥 샘께 감사드린다. 내가 '그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확인 시켜 주셨다. 그것은 확실히 여성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 아니무스상에 많이 이끌린다는 경험적 사실의 확인이었다.  (그럼 그렇지!) 중요한 걸 하나 재발견한 기분임!ㅎㅎ

 자서전과 대중적 저서의 복습은 나 뿐만 아니라 모든 도반들에게도 놀라운 재발견이었다. 이어지는 전집의 느낌이 기대된다.
 집에 돌아올 때까지 하늘이 너무도 청명했다. 길위에 서서 어디로 갈지 갈팡질팡 할 정도로 눈부신 하늘은 긴 장마가 떠나며 남기고 간 선물이었다. 

   Peter Birkhäuser가 그린 젊은이로 묘사된 '자기'의 모습. 태양과 네개의 팔은 정신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어두운 밤은 그가 무의식의 세계에서 왔음을 의미한다. Carl G. Jung, 인간과 상징, 열린책들,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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