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와인을 한 번 맛보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곧이곧대로 믿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허세와 과장이 섞인 이 말이 나에겐 못 마땅하게 들렸다. 이런 말을 할 처지가 못 되지만 호기심은 많은 나의 자기 보호 본능에 사실은 더 가깝다고 인정한다

나는 지금 크리스탈 잔의 2부 정도를 채운 그람스 10년 숙성 토니 포르투를 이미 다 마시고 난 다음 이 글을 적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는 나도 저 말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느꼈다. 누런 빛이 돌지 않는 포르투는 이제 내 눈과 코에 들어 오지 않을 걸 걱정한다. 오히려 10년 짜리가 이 정도면 20, 30년 동안 오크 통에서 화학작용을 하고 있는 액체는 도대체 무엇이 되었을까 궁금해 못 견딜 정도다

내가 포르투갈에 처음 왔을 때 포르투 와인의 존재 자체도 알 지 못했다. 미국인 친구는 나에게 포르투 와인이 레드 와인에 블렌디를 섞은 거 같다고 말했다. 그냥 기본 숙성된 포르투를 처음 맛 보았을 때 그 친구의 말이 정말 옳다고 생각했다. 꽤 달고 센 와인 정도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내가 경험해 본 와인 세계의 크기와 내 어휘력으로 그 이상의 묘사가 당시에는 딱히 없었다. 작년 춥고 습한 겨울 밤에 홀짝이는 용도로 싸구려 포르투 한 병을 집에 두고 마셨다. 그 이전에는 싸구려 그라빠였었다

그러다 지난 크리스마스 무렵, 큰 맘먹고 누가 좋다고 알려 준 콥케 10년 숙성을 면세점에서 사서 누군가에게 선물해 드린 적이 있다. 식사 초대를 받았었는데 후식으로 설탕에 절인 직접 기른 배 조각들 위에 그 포르투를 부어 함께 먹었다. 그때 비로소 처음 경험한 10년의 향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훌륭한 것들이 많음에도 내세우는 법이 없는 포르투갈 사람들처럼 이 적갈색 액체는 포근하고 여운이 긴 이전과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다. 루비처럼 검붉었던 와인은 오크 배럴 속에서10년의 화학작용을 겪고 나면 자신을 감싸고 있는 나무의 성질과 향까지 뽑아내 고치를 찢고 나온 기품있는 나비로 탈바꿈했다.

이 맛에 어울릴 만한 묘사를 생각하다 딱 이거다 싶은 게 있었다. 그건 한방탕이었다. 특별한 목욕탕에 있는 쑥과 감초 향이 섞인 거무스레한 그 한방탕의 내음이었다. 어쩐지 익숙하다 싶었다. 일종의 허브 또는 약초의 향이 삼킨 다음에 휘발되는 알콜과 함께 비강 안을 오랫동안 채운다. 숙성 기간이 짧은 포르투에서 느껴지는 강한 알콜향은 온데간데없고 오크와 포도 이 두 가지 식물이 만난 지 10년이 지나서 생긴 자식같은 향이 나온 것 같다.

잘 숙성된 포르투는 식사를 마친 다음 샷으로 마무리하는 디져트 와인처럼 즐기거나 위스키처럼 춥고 공허한 밤 또는 불안한 밤 마음을 감싸주고 싶을 때 마시면 좋다. 강한 향과 도수 때문에 식사용으로는 과하다. 음식 맛을 압도해 버릴 것이다. 병마게가 꼽았다 뺐다를 반복할 수 있도록 코르크와 플라스틱이 결합되어 만들어져서 한 병을 사면 몇 주 동안 두고 마실 수 있다. 보통 와인만큼 잔에 따르지 않고 훨씬 작은 전용 잔에 절반 이하로 따라서 마신다. 대략 샷 글라스로 두세 잔 정도의 양이다. 한편 같은 도수의 소주의 경우 한국에서는 한 사람이 한 번에 1-2병씩 마시는 걸 보면 한국인의 과음 습관이 아주 심하다고 느껴진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