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어가 왜 이렇게 늘지 않지?

아, 열심히 안해서 그렇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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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미국인의 삶을 위트있고 날카롭게 잘 풀다가 마지막에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왜 꼭 자랑스러워해야만하나?" 의아해졌다. I'm pride of myself의 개념이 내가 아는 거랑 다른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나도 미국적 소셜 프레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외향적이어야 하기, 자존감 넘치는 사람이어야 하기, 유머있어 보여야 하기 등등.

반대로 그러지 않은 사람들은 얼마나 자신을 밀어붙이며 피곤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상상이되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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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친구 ㅇ과 나눈 대화에서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나: (그쪽에서 나에게) 눈치 이정도 주면 알아서 연락 안해야 되는 거 맞다고 느껴서 

친구: 음.. 그렇군, 좀 서운했겠네

나: '나도 이제 남들이랑 쉽게 어울릴 수 없는 아저씨가 되었구나. 빨리 눈치 채야지' 라고 생각했어 

뭐 어쩔 수 없지. 내가 좋다고 남도 나를 좋아하길 기대하면  남이 날 불편해할 수 도 있으니. 뭐 다반사지 뭐

친구: 너 그얘기 자주하더라

나: 그래? 그렇게 생각할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ㅇ: 아저씨가 되었구나 빨리 눈치채서 불쾌한 아재가 되지 말아야지 같은거.  그냥 너랑 안맞은거지

나: 당연히 그래야지. 졸라 민패에 짜증나는 사람 되서 뭐해

나: 잘 맞는 상대가 많이 줄어 들면 아저씨가 된거라고 생각해서

ㅇ: 모르겠다 내가 그 상황에 없었으니 너가 하는 말로만 상황파악을 할수 밖에 없지만 

너 그렇게 민패에 짜증나는 사람으로 사람들이 받아들일 만큼 가지는 않는것 같애

그냥 뭐 내가 너 친구고 하니까 이미 객관성을 잃어버린것일수도 있지만 ㅋㅋㅋㅋ

그래도! 민폐아저씨 개저씨 그런건 아니다

나: 뭐 그냥 내가 혼자 오바하다가 나중에 혼자 실망하기 싫어서 미리 관두는 거 같애

ㅇ: 음... 뭐 그건 공감해

나: 나도 오랜만에 친구 생기나 싶었는데

그쪽에서 "됐어요" 그러니깐 민망하고

ㅇ: 그냥 그들과 성격 성향이 안맞는거라 하자 여자들끼리 놀고 싶은가부지~ ㅋㅋㅋ

나: 그런 걸 직접적으로 이야기 해주지 않으니 혼자 며칠 동안 추리 해서 판단해야 된다는 것도 유쾌하진 않잖아. 

게다가 그 누구의 잘 못도 아니고

ㅇ: 응 그렇지 

나: 응 그래서 내 결론도 마찬가지야. 맘 맞는 여자들끼리 눈치 안 보고 재밋게 편하게 놀고 싶은 거 같은데 눈치 없는 부장처럼 끼지 말자. 부장 되기 전에 사라지는 거지 ㅎㅎ

ㅇ: 뭐 내 요지는 너도 말한대로 성격 성향 등등이 안맞은 상황인 것 뿐이지 너가 눈치 없는 부장까지 된건 아니라는 거였어

야 한국오면 나랑 같이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자 

나: 나이 드는 게 어릴땐 막연한 공포였는데 말이지. 지금은 피부에 닿을 듯한 거리에서 위기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해서 더 무서운 것 같애. 

직업, 돈, 연애, 인간관계....진짜 나이가 제약이 되는 걸 실감하게 되니깐 그 크던 자신감이나 거침없음이 점점 사그라지고 있는 기분이야

그 좁아진 운신의 폭에 어떻게 이미 부풀어진 자아를 끼워 넣어 살아야 할 지 모르겠어. 

ㅇ: 자기 객관화가 나이가 들수록 필요하다는 걸 윗세대를 보면서 느끼고 있지만 너무 나를 죄어들지는 말자 사실 이말은 나 자신한테 하는 말이기도해

너무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나 스스로 너무 묶고 죄는것 같아서 나이들수록 그 좁아지는 삶을 느슨하게 하도록 노력하자? 나는 내가 눈치 좀 덜 봤음 좋겠고 때로는 민폐 끼치는 것도 신경 덜쓰면 좋겠고 그렇거든 ㅎㅎㅎ

나: 그런 고민 많이 안해도 되는 편안한 곳을 찾아 가는 게 가장 자연스러울텐데

ㅇ: 참 이건 딴 얘길수도 있는데 비슷한 얘기를 여동생이랑 하면서 여동생이 하는말이 애를 낳고 기르다보면 그렇게 될수 있데 ㅎㅎㅎㅎ 

나: 30대는 그런 여백의 삶이 갑자기 확 사라지는 나이인것 같애

대부분 결혼해서 가정안으로 사라져버리고, 일을 안하는 사람들은 직업인들의 삶과 완전 결이 달라지고. 

어릴때랑 다른 게 나이가 동질성을 만들어주는 시기가 30대가 되면 덜컥 끝나버려서 둥 떠버려

우리처럼 결혼 안 한 미(비)혼 비 정규직 근무자들은 특히. 정말 주변 레퍼런스도 없고 낄대도 없고

ㅇ: ㅋㅋㅋㅋ 낄대 있어. 걱정마 한국으로 와

나:  한국은 그나마 찾을 수 있겠지

난 아직 이곳 생활이 정착이 안되서 그런 곳을 못찾아서 가끔 나를 건강하게 들어낼 곳이 없어서 답답하고 심심해

ㅇ: 응 그러겠다

나: 여기서 한국 남자들 끼리 어울리기는 정말 고독사하는 것 만큼 싫다 ㅋㅋㅋ

졸라 개저씨 속성 코스 밟는 거야 ㅋㅋㅋ 몇명 잠깐 봤는데 어휴 스멜이....

암튼 내가 원하는 모임이 없고 나를 원하는 모임이 없으니 내가 만드는 수 밖에

ㅇ: 너의 창작력을 함께 불태울 그룹이 주변에 쉽게 찾을 수 없다는게 안타깝다. 뭐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자기가 낄곳이 없다고 소외감을 느끼는 한국 사람들도 많이 있긴한데.. 어쨌든 이런저런 쪼꼬마게 라도 장난하고 있음 친구도 찾을거야

나 이제 가야함. 

나중에 또 얘기해

잘지내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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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잠 못 드는 밤을 보냈다.

주말에 뭔가 하지 않으면 후회가 남기에 좀비같은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처음으로 자연사 박물관에 가서 화석과 뼈들을 보았다. 

공룡과 같은 시대를 살았을 거대한 길이가 8미터는 될 법한 악어, 꼬리가 몸통 만큼 긴 공룡, 정말 뼈만으로도 아름다운 고래 그리고 인류의 선조들. 

가장 멋졌던 것은 여러 고래의 수중에서 녹음된 울음소리였다.

지구에서 가장 평온하고 자유로운 생명체의 언어는 신비로웠다. 설명과 같이 무리에게 전하는 단순한 메세지보다 많은 내용이 있을 거라 믿게 된다. 

고래의 말은 이제 내가 가장 이해하고 싶은 언어가 되었다. 

고래가 보고 싶어졌다.


7월은 여름 창고 정리 세일 기간이다. 

멀리 있는 쇼핑몰에 가지 않고 산 마르코 근처로 갔다. 가는 길에 가이드를 하고 있는 유리와 지나치며 짧은 눈 인사를 나눴다. 

많은 가게를 구경했다. 첼리오, 베네통, 마시모 뚜띠, 비알레티, 알 두카 다오스타, 코인.

싼 건 더 싸지고, 비싼 건 여전히 비싼 가운데 평소 근처를 지날 때 마다 꼭 한번은 들여다보게 되는 멋진 남자 옷 가게를 계획에 없이 다시 보게 되었다.

면 반바지를 찾고 있었는데 쇼 케이스에 좋은 소재의 반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지날 때 마다 항상 눈길을 끌었던 옷가게였지만 비싸서 들어가 구경해볼 엄두를 못 내던 곳이다. 오늘은 70%세일이라 길래 큰 맘먹고 처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 옷 가게는 이탈리아 북부 대도시에 사는 잘 다듬은 은색 수염을 기르고 원색 트라우져와 블레이져에 화려한 패턴의 스카프의 조합을 즐길 줄 아는 이탈리아 중년 남성이 주 고객 층일 법한 곳이다. 나도 이런 스타일이 어울릴까 항상 궁금했지만 이 정도 고급 부티크는 들어가기 어렵다.  그런데 70%세일이라니. 나 같은 이에게도 손을 내미는 듯한 이 기분. 

재고 처리를 위해 디스플레이는 잊고 옷가지들을 쌓아 놓은 모습이 나를 더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쇼윈도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진한 갈색의 반바지를 입어보았다. 이런 도톰한 재질과 화려한 안감의 반바지를 처음 착용해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거의 사야겠다는 마음으로 윗 층에 다른 옷들도 살짝 구경해 보러 올라갔다. 반바지가 아닌 수트 바지들이 역시 파격 세일 중이었고 아까 본 반바지와 거의 비슷한 가격의 진한 파란색의 판탈로니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기 때문이다. 

남녀 직원이 서로 쉴세 없이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바지를 갈아 입어보았다. 역시 더 좋은 재질의 바지였고 바지 주머니용 안감에는 카날 그란데에서 바라본 14-15세기 베네시안 고딕 스타일의 저택들이 프린트 되어 있었다. 집에 다가 안감이 보이게 걸어 놓고 싶을 만큼 쓸데없이 아름다웠다. 생애 최고의 바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게다가 이 바지님을 집으로 모시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 몸을 낮춰 주시기 까지! 

쇼핑백의 두께마저 두툼하다.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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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임을 갔다. 

책에 대해 말한다는 건 생각보다 간단한 것이 아니다.

내가 소개하는 책의 종류나 독서량은 내 지성의 척도라 이걸 남에게 드러내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약속 시간에 늦은 나는 부랴부랴 예전에 어디선가 말한 적이 있는 칼 융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을 집어 들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이 책은 사람들에게 적당히 안 알려져 있고 남들이 다 관심을 가지지만 막상 잘 알기 어려운 분석 심리학에 관한 책이라 허세를 부릴 때 안성마춤이다. 

이 책을 소개한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몇 번 잘 먹혀 들어간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또 우려먹는다.

내 앞에 5명이 이런 저런 책들을 소개했다. 

그리고 네번째 사람의 첫 마디가 나의 등판을 짝 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가 책을 아주 많이 읽어요. 특히 바쁠 수록 책을 더 많이 읽는데 요즘 정말 바빠서 특히 책을 많이 읽었어요."

놀랍다. 

나는 저런 자신감도 없고 실제로 책을 많이 읽지도 않기에 내 차례가 오기도 전에 약간 주눅을 들뻔했다. 

그 사람 앞에는 외국 작가의 에세이 아니면 요즘 핫한 인문학 책쯤으로 보이는 책 한 권 있었다. 세련된 제목 때문에 내용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 책을 그냥 요즘 읽기 시작한 책이라고 만 소개하고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았다. 

조금 의아했지만 '맞군. 여긴 내가 이런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란 걸 드러내는 자리였지.'라고 생각하자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어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책으로 '어린 왕자'를 꼽았다.  

그런데 또 다시 어린 왕자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걸 읽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는 말로 다시 한번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몇 해 전 어린왕자 애니매이션을 본 게 전부인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린왕자라...물론 두말할 것 없이 훌륭한 책이다.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이 슬픈 동화로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이후의 토론에서 난 내가 혹시나 비꼬는 말투가 세어 나오지 않을까 계속 단속해야만 했다. 

나도 정말 꼬인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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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는 중학교 시절이 자신의 인생의 최악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사춘기가 되면 2차 성징이 도드라지는 서양 여자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신체 발달이 느린 남자 아이들의 호기심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그 호기심은 잠자리 날개를 양손으로 잡고 반대 방향으로 잡아 당겨 그 속살을 보는 순수한 아이의 것 만큼 잔인하다.

신체적 차이가 같은 반 친구라는 인식을 뒤덮어 버리는 생애 최초의 타자화 경험일 것이다. 

클라우디아는 남자애들의 짓궂은 장난을 피하기 위해 남자애들처럼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 그녀가 치마를 입은 걸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남자 아이들의 호기심 해소가 폭력적인 수준에 이르러도 여자 아이들은 별 도리가 없는 것도 한국과 마찬가지다. 

더러운 농담과 심한 장난이 워낙 일상적이라 화를 내거나 울면 과도하게 예민하고 쿨하지 못한 아이 취급을 받는다. 이것은 아이들 사이의 권력 관계에 가장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무리에서 배제될 수도 있는 큰 위험이다. 

그렇다고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해도 그들은 그리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는다. 사이좋게 지내라는 훈계 수준으로 자신의 도리를 충분히 다 했다고 여긴다. 그 이후의 다른 남자 아이들의 보복성 장난은 고스란히 일러바친 아이의 몫이 될 것이 뻔하다. 

꽤나 놀라웠다. 내가 지금까지 느낀 이탈리아 여성들에 대한 인식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본 이탈리아 여자들은 언제나 기분껏 입을 가리지 않고 큰 소리로 웃는다. 상대방이 어이없는 소리를 하면 손끝을 모아 흔들며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 줄 안다. 다리 사이가 살짝 보이는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어디 서나 편하게 앉고, 담배 피우는 모습이나 문신이 남에게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 와서 성적 수치심이라는 게 남성들이 여성을 제압하고 통제하기 위해 고안해낸 것인지 진짜 인간의 본성인지 가끔 헷갈리기 시작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당당한 이탈리아 여자들 대부분의 학창 시절 역시 이런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도 남자 아이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넘어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는 게 의외였다. 나는 한국 여자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지위를 갖는 이탈리아 여자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어떻게 저런 굴레로부터 해방되는지 아직 너무 궁금하다. 

물론 그녀들이 한 순간에 완전히 남성들과 동등한 위치가 되는 경우는 물론 여기 서도 없다. 이탈리아는 서구에서도 손꼽히는 여성 혐오와 성차별 국가이다. 요즘 한국 인터넷에 회자되는 '이탈리아 여행 중 로맨틱한 이탈리아 남자들의 시적인 픽업 라인 들어보기'는 한국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예쁘장한 얼굴의 재벌 3세와의 달콤한 신데렐라 스토리만큼 비현실적일 것이다.        

한편, C가 미디어에서 본 일본 선생과 제자 사이의 강한 유대가 개인주의의 문화에 속한 그녀에게 부러울 정도로 인상적으로 보였나 보다. 

나는 나의 한국 대학원 지도 교수님과의 특별한 유대에 관한 좋은 예시를 소개하며 그녀의 선입견을 더 강화 시켜준 것에서 멈췄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 선생들과의 포스트 트라우마적인 수많은 악몽들은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기억을 하나 하나 끄집어 내다가 피어오를 나의 독기가 그녀에게 느껴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몇몇 선생님과의 멋진 추억도 말해주었다. C를 너무 좋아했던 한 선생님은 새로 태어난 자신의 딸에게 같은 이름을 지어줬을 정도로 그녀를 특별히 아꼈고 수업 이후에도 연락을 주고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선생님과의 남다르게 친한 관계를 부담스러워한다.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단지 그녀는 자신이 정한 어떤 거리 이상으로 누군가가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것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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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를 만났다. 

이탈리아에서 1X년째 지냈다는 그의 몸에서는 여전히 가시지 않는 냄새가 있다.

나 역시 한국을 벗어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바람에 희석시키고 싶었던 바로 그 냄새.

인사와 함께 시작된 첫 5분간의 대화의 형식을 취한 그의 난데없는 충고는 나를 순식간에 한국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 짧은 시간 만에 그는 능숙하게 나를 자신보다 아래의 위계로 시나브로 밀어 넣으려 했다. 

눈치는 없지만 이런 종류의 서열 정리는 동물적으로 알아채는 능력을 체득한 내 머릿속은 경보 신호로 요란하다.

틀에 박힌 패턴들. 

고향이 어디냐. 말투를 들어보니 딱 알겠더라. 연이은 슬쩍 말을 놓기. 

그래도 비록 자신은 가까운 지역 출신의 선배지만 (정작 자신의 출신은 말 않는다.) 초면에 상대의 나이를 물어보는 무례를 범하지 않은 세련된 매너의 소유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참 하나를 발견하고 자신이 그동안 피눈물 흘리면 깨달은 진리를 너를 위해 미리 알려주겠다는 듯한 그의 따뜻한 배려심에 알러지 반응이 일어 나는 자꾸 옆 사람에게 구조를 바라는 눈빛을 보내본다.  

서글펐다.


내가 느꼈던 좌절감이 너를 피해 갈 리 없다.

너도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너도 알아야지.

혹시나 너의 좌절감이 너를 피해가거나 나보다 작아선 안되. 

그래서 너는 나의 충고를 들어야 하지만 내 충고대로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이를 불문하고 내가 짧은 해외 체류 중 만난 남자 '인생 선배'들은 대부분 교묘하게 아니면 노골적으로 어떤 식으로 든 나에게 저 뜻을 전하지 못해 안달이 나있었다. 

어느덧 나는 이들의 냄새를 잘 맡게 되었다. 굳이 냄새를 맡을 만큼 가까이 있지 않아도 멀리서 관상만 봐도 알아 채는 능력으로 발전하고 있다. 꽤 유용할 것이다.    

동시에 내가 풍기는 같은 냄새를 알아차리지 못해 항상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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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기 전에 나가 산책을 나갔다. 베네치아에 살면서 좋은 점은 동네 마실을 베네치아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괜찮은 제과점인 DAL MAS앞을 지나가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 안을 들여다 봤다. 

신나게도 아직 프리텔레가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짜바요네와 베네치아네 하나 씩 골랐다. 

프리텔레는 홈런볼과 비슷한 구조로 크고 아름답고 부드러운 밀가루 반죽 튀김안에 여러 크림을 채워 넣는 베네치아 지역에서만 먹는 스넥이다. 보통 새해부터 카니발이 끝날 때 까지만 베네치아 거의 모든 제과점에서 판매한다. 나는 이것에 환장하여 재산을 탕진하고 있다. 

이번 시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떨리는 마음으로 짜바요네가 든 놈을 꺼내 들었다. 슈가 파우더가 검정 코트 위에 떨어지고 삐져나온 크림이 손에 범벅이 되는 걸 아랑곳 않고 고이 한입 베어 물었다.  

'역시 이 집 짜바요네는 유독 럼이 많이 들어가 쌉싸름함이 남다르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 처음 짜바요네 크림이 들어간 프리텔레를 먹어보고 이게 뭔가 싶었다. 일 년이 지난 올해는 한동안 거의 날 마다 사 먹지 않으면 잠들 때 중요한 의식을 빼 먹은 듯한 허전함이 들 정도로 이 충실한 특대 버전의 홈런볼을 탐닉했다.

돌 지난 아기 주먹 만한 이 튀김 덩어리 안을 가득 채운 검노란 크림 맛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홍어 맛을 알게 된 외지인이 목포 사람들로부터 "인자부터 자네는 전라도 사람이여"라는 말에 버금가는 영예라고 혼자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짧은 산책을 이렇게 적어 두는 이유는 해질녘 언제나 관광객으로 붐비는 스트라다 노바에 새로 붙은 아래의 포스터 때문이다.

나는 이 포스터의 메세지와 이미지를 한참 동안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유럽인이든 조선인이든 사람은 누구나 위선적이다. 하지만 나는 어려운 시간일 수록 마치 알몸에 가리기 위해 거적처럼 집어 드는 위선이 때로는 내 삶에 큰 차이를 만든다고 믿는다.   

2년 전 후암동의 한 도서관 행사에서 손택수 시인이 한 이야기가 떠 올랐다.  

나치에 의해 유대인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매일 반 컵 분량의 물을 배급 받았다. 차랍시고 주는 것인데 그냥 거의 다 식은 데운 맹물 일 뿐이었다. 수감자의 대부분은 언제나 모든 게 부족했기에 그 즉시 마셨다. 

그리고 일부는 그 물의 절반을 마시고 남은 절반으로 조심스레 얼굴에 묻은 때를 닦고 수염과 머리카락을 쓸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낭비처럼 보이는 행동을 숭고한 의식처럼 매일 이어갔다. 나치가 패망하고 그 지옥같은 수용소에서 해방된 수감자들 중 살아 남은 사람들 대부분을 보니 그렇게 매일 조용히 자신의 한 꺼풀의 존엄이나마 유지했던 사람들이었다. 

팔리지 않는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드는 사람들과 누군가의 위선적이라는 시선에도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 역시 분명히 인류 전체의 존엄을 유지하는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쓸모없이 아름다운 일들을 하는 사람들 덕분에 내가 까먹는 인류 전체의 존엄이 그나마 상쇄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려 한다. 

또 이런 무임승차 부끄러워하는 나의 위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오늘의마실#Welcomerefugees#베니치아

2017년 1월 베네치아

'파테*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무관심과 모욕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져버렸다. 인간의 목숨은 체류허가보다 더 귀하다.'

#Welcomerefuees  

*아프리카 출신 난민인 파테는 2017년 1월 베니스 리알토 다리 근처 대운하에 몸을 던졌다. 그 당시 다리 위와 그 주변에는 수 만 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파테가 빠진 운하 역시 사람들을 가득 채운 수상버스와 곤돌라 여러 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관광지 한가운데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가 익사하는 장면을 구경만 했고 아무도 물속으로 뛰어 들어 그를 구조하려 하지 않았다. 운하 폭은 30여미터 밖에 되지 않고 누군가 그를 끄집어내려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았다. 슬프게도 마지막 순간 구조 대신 그가 받은 것은 난민들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던 인종 차별주의자들의 조롱과 모욕이었다. 베니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전체는 자신들의 드러난 추한 민낯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유럽 사회 전체에서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는 인간성 상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베네치아에서 이 문제에 대해 반응은 부끄러움과 관광 산업에 미칠 영향 때문인지 쉬쉬하는 분위기다. 이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일부 난민들과 이탈리아 활동가들은 베네치아 산타 루치아 역 앞 광장에서 위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었다.    

내가 태어난 나라가 스스로의 민낯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보면 참담함을 느낀다. 

"이 지구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 만들었다네. 믿을 수 없다면 조간신문을 사서 읽어보도록 하게. 어떤 신문이든 어떤 날짜든 상관없다네." 

- 이랑, '신의 놀이' 앨범의 '좋은소식 나쁜소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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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데이트 코치는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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