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을 돌이켜보면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오늘은 올해들어 가장 아름다운 하루였을 거다. 

클라우디아 오빠 부부가 이탈리아에 돌아왔고 나는 가족들의 점심 식사에 초대 받았다. 

늦잠을 자서 shit하면서 일어났고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프로세코와 디져트를 샀다. 

클라우디아 입이 닳도록 말한 아빠 이바노의 음식자랑도 기대 됐고 무엇보다 털이 팡하고 터지고 살이 오른 유키를 오래 전부터 너무 다시 안고 싶었다. 

나지막한 산들이 둘러쌓고 있는 클라우디아의 집으로 향하면서 저멀리 다른 산이 구름으로 이루어진 바다위에 섬처럼 떠있는 게 보여 우리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클라우디아의 아버지 이바노와 어머니 테레자에게 인사할 때 뺨에 키스를 할지 악수를 할 지 궁금해 클라우디에게 물었다. 

막상 도착하니 예상과 달리 테레자는 나에게 먼저 악수를 청해서 내가 먼저 뺨을 갖다댔고 이바노는 먼저 키스를 했다. 그렇게 따가운 수염을 닿아 본 적은 처음이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한 거실과 나무 오븐을 쓰는 주방은 포근하고 따뜻했다. 

엔리코와 샤우를 처음 만났다. 엔리코는 사진과 똑같았고 샤우는 아주 말랐지만 기품이 있었다. 

테레사가 말없이 내준 첫 요리는 라디끼오 라자냐. 파스타가 얇고 주변은 바삭하게 익어서 전혀 느끼하지 않았고 라디끼오와 섞여있는 파나의 깊은 맛이 너무 부러웠다. 

두 번째 요리는 이름을 잊었다. 부럽게 익힌 소 창자를 페퍼론치노, 곱게 간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소스에 버무린 요리였다. 소 내장이 하얗고 조그맣게 생겨서 첨음엔 뇨끼인줄 알았다. 

한국에서는 쫄깃한 소 곱창만 먹어 봤다고 이렇게 부드럽고 냄새가 전혀 안나는 내장요리를 먹어 본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특히 곱게 갈린 양파가 소스의 점도를 높이면서 달콤한 맛과 함께 혀에 부드럽게 감기는게 너무 좋았다. 

그리고 하일라이트로 포카챠에 남은 소스를 긁어 먹는 것. 식사를 마친지 5시간여가 지난 지금 다시 그 맛이 그리워진다. 

식사를 마치고 클라우디아 엔리코로 부터 선물 받은 최신 노트북/태블릿 pc를 함께 구경했다. 근사했다. 화면 전체가 터치 스크린이고 얇은 휴대용 키보드와 스타일러스가 딸려있다. 아이패트 프로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유키를 만나러 가는 시간. 다시 만난 게 너무 기뻐 두팔을 벌리고 뛰어가자 유키는 놀라서 몸을 숨겼다. 다시 쪼그려 유키에게 다가 머리아 등을 쓰다듬으니 바로 그르릉 거렸다. 아직 나를 기억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유키가 편안해 하는 눈치라 살짝 품에 안아 들어봤다. 내 얼굴을 유키 얼굴에 가져가 대보니 눈물이 날 것 처럼 황홀했다. 

이렇게 영원히 유키를 안고 싶었지만 불편해 하는 기색이 보이여 살포시 유키를 내려놓았다. 그래도 쪼그려 앉은 내 주위를 빙빙돌며 내 다리에 얼굴과 머리를 부벼주니 마치 교황으로 부터 축복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만으로 기쁨과 행복함으로 충만한 하루를 보낸 기분이다. 

산에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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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해변가의 시라쿠스 출신인 루치아는 카톨릭 박해의 막바지였던 4세기 초 고문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순교했고 순교중에 나타난 기적으로 성녀로 봉해 졌다. 그녀는 사진처럼 끔찍한 고문을 받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더 대표적인 이미지는 두 눈알이 담긴 접시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대부분 그려져있다.

이는 그녀가 고문을 당하던 도중(혐주의)포크로 두 눈알이 도려내졌는데 바로 새로운 눈이 생겨난 기적을 표현한 것이다. 이 상징은 새로운 눈=빛=룩스(라틴어)=루치아=겨울의 빛(축일 12월 13일)과 연관되어 해석된다.

 

그럼 어떻게 산타 루치아의 유해는 베네치아로 오게 됐을까? (당연히 훔쳐..) 6세기에 교황으로 부터 기적을 인정받아 성인으로 봉해진 후 그녀의 유해는 비로소 8세기에 고향인 시라쿠스에 안치되었다. 하지만 머지 않아 11세기에 비잔틴의 마니아쿠스가 가져가 콘스탄티노플의 황제에게 바쳐진다.

황제의 도시에 있던 성인의 유해를 가져갈 수 있던 자들은 역시나 베네치아. 1206년 콘스탄티노플이 믿는 도끼에 의해 탈탈 털릴 때 베네치아 십자군을 이끌었던 도제 엔티코 단돌로는 그 수많은 보물과 성물 가운데 가장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시력을 거의 잃은 노년의 나이에도 연합 함대를 이끌고 비잔틴 황제를 상대로 압도적으로 유리한 협상(사실 겁박 후 강탈)을 이끌어낸 그는 빛의 성녀 루치아의 힘으로 시력을 회복하고자 유해를 가지고 베네치아로 돌아온다. 그뒤 종신직이었던 도제쉽에서 스스로 물러나 자신의 집무실 겸 관사였던 팔라쪼 두칼레를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산 조르지오 수도원에 들어가 죽음 그 이후를 준비하면서 여생을 마무리한다.

그 이후에도 유해는 조각 조각 나뉘어 여전히 유럽 여러 곳으로 흩어졌고 두개골을 포함한 주요 유해는 오늘날 동명의 역이 있는 산타 루치아 성당에 비로소 안치된다. 1861년 이 성당이 지금의 역사 신축을 위해 철거 되었을 때 동쪽에 위치한 산 제레미아 성당으로 옮겨져 지금까지 남아있다.

유해를 옮기는 행사에서 베네치아 대주교와 교황이 될 요한 23세에 의해 그녀의 얼굴에 실버마스크가 씌워졌다. 1981년 7월 이 성당에서 도난된 유해는 알 수 없는 이유로 5개월 후 되돌아온다.

아마 베네치아를 찾은 사람이라면 스트라다 노바를 거의 지나가는데 거기 있으니 눈이 좋지 않으신 분들이나 주변에 안구 질환이 있으신 분들은 지나치지 말고 한번 들어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그냥 사진찍고 지나치기엔 베네치아 성당 하나하나엔 정말 길고 재미난 썰들이 많고 많다.

최근인 2014년에는 베네치아에 있던 산타 루치아의 유해가 고향인 시라쿠스로 일시적으로 옮겨져 고향 사람들과 대중에게 아주 잠시 공개되어 수많은 순례객들이 찾게 되었다. 실버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과 노출된 발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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